파트 1 – 새로운 길의 시작
아리아는 열다섯 살이었다. 늘 공책을 깨끗하게 쓰고, 자의 모서리를 부러뜨리지 않으며, 시험에서 19점을 받아도 ‘20점도 받을 수 있었지’라고 알기에 반쯤 미소를 짓는 그런 아이였다. 아침 첫 종이 울릴 때면 머리는 날카롭고 맑았고, 마지막 종 무렵이면 조금 흐릿해졌지만 여전히 단단했다. 오후에 학교가 끝나면 곧장 아버지의 작은 슈퍼마켓으로 갔다. 갓 구운 빵, 종이상자, 세제 냄새가 한데 섞인 가게였다. 그는 계산대에 앉거나 진열대를 정리하며, 동전 하나까지도 장부에 맞게 계산이 맞는지 살폈다. 집안 사정은 넉넉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말수가 적었지만 어깨에 쌓인 피로가 눈에 보였다. 어머니는 늘 반쯤 걱정 어린 미소로 “하나님이 크시니까 괜찮아”라고 말했다. 아리아는 말없이, 도우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의 즐거움은 무엇이었을까? 밤—숙제가 끝났고, 전기가 나가지 않았고, 아버지에게 늦은 손님이 오지 않았을 때에만—작은 방에서 낡은 노트북을 켰다. 그리고 액션과 전쟁 영화를 봤다. 폭발과 추격전, 선과 악이 사양 없이 마주 서고, 지치지만 단호한 영웅이 싸워 이기는 세계. 예측 가능하지만 위로가 되는 흥분. 한 시간만이라도 진열대와 청구서를 잊을 수 있는 곳.
열다섯 번째 생일날, 저녁에 가게에서
돌아오자
외사촌
누나가
전화를
걸어왔다.
목소리에는
들뜬
기운이
가득했다.
– “아리아! 생일 축하해! 너한테 대박
선물
준비했어.
로맨스
드라마야…
한국
거야!
엄청
유명해.”
아리아는
바로
그
복도
한켠에서
멈칫했다.
‘한국?
로맨스?’
속으로
말했다.
나는
액션
파인데…
하지만
사촌누나는
취향이
좋았다.
그날
밤
바로
선물을
보내왔다.
아리아는 마지못해, 그렇지만 예의상 밤늦게 노트북 앞에 앉았다. 1화 파일을 열었다. 푸른 화면빛이 벽에 번졌다. 재생 버튼을 눌렀다. 하품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첫 장면: 서울 거리 위 가을비가 가늘게 내렸다. 물방울이 아스팔트 위에서 반짝였고, 네온 간판의 빛은 흔들리면서도 따뜻했다. 잔잔한 음악—피아노와 몇 개의 바이올린 음—이 어떤 부드러운 감정을 짜기 시작했다. 카메라는 소녀의 얼굴로 갔다. 얇은 앞머리가 이마에 붙었고, 크고 큰 눈동자에는 말하지 않은 수천 개의 말들이 담겨 있는 듯했다. 소년은 차가우면서도 단정한 타입, 어두운 코트를 입고 시선을 모은 채, 우산 아래 서 있었다. 짧은 시선, 한 번의 머뭇거림, 그리고… 아무 중요한 일도 없었다. 그런데도 아리아는 무의식적으로 자리에 더 가까이 다가앉았다. 어떻게 ‘아무 일도 없음’이 이렇게 ‘무언가’가 될 수 있을까?
대사들은 적고 간결했다. 소리 지르는 사람도 없었다. 폭발도 없었다. 하지만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었다. 소녀가 커피잔을 들 때 떨리는 손, 소년이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우산을 조금 기울여 그녀의 머리카락 위에 물방울이 떨어지지 않게 하는 순간, 빨간 신호에서 두 사람이 멈춰 선 그 두 초가 서로의 호흡과 동시에 맞물리는 장면. 헐리우드의 북적이는 영화관에서 사랑을 갑작스러운 키스와 큰 음악으로만 보아온 아리아는 속으로 말했다. “왜 이렇게 천천히 가는 거지?” 그리고 곧, 그가 얼마나 이 천천함을 원했는지에 놀랐다.
드라마는 ‘학원 로맨스’가 아니었다. 서로 다른 두 계급의 두 사람의 이야기처럼 보였다. 작은 카페에서 일하는 소녀, 건축회사 후계자인 소년. — 바로 그 한 단어, ‘건축’이 아리아의 귀를 쫑긋 세웠다. 드라마 속 건축가들은 잘 맞는 코트를 입고, 모형과 대화를 나누고, 큰 종이 위에 선을 그으며, 한적한 카페에서 빛과 공간과 그림자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리아는 건축을 그렇게 본 적이 없었다. 그에게 건축이란, 가끔 가게에서 손님들이 들고 오는 도면—시멘트나 나사, 볼트를 사러 올 때—구겨진 종이, 관공서의 도장, 감정 없는 선들. 그런데 여기서는? 마치 건축이 꿈의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드라마는 모든 것을 느긋하게 보여줬다. 작은 국밥집에서의 정다운 식사,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수프, 뜨거운 철판 위에서 지글거리는 고기의 소리, 젓가락이 마치 섬세한 두 손가락처럼 한 조각을 집어 상대의 그릇에 놓아주는 장면. 그 전까지 음식을 ‘경험’이라기보다 ‘필요’로만 보던 아리아는, 한 입의 미소가 왜 그렇게 사랑스러운지 알 것 같았다. 사람들은 이런 평범한 순간들에서 더 가까워진다.
대사들은 단순하지만 정확했다. 소녀는 말했다. “나는 내 꿈을 큰 소리로 말하는 법을 몰라. 누군가가 내 옆에서 천천히 걸어줄 때… 그때 더 천천히 조용해져.” 소년은 말했다. “어떤 다리들은, 두려움 위에 지어야 해. 두렵지 않으면, 그게 단단한지도 몰라.” 아리아는 미소 지었다. 처음으로 ‘꿈’과 ‘건축’이 한 문장 안에서, 마음에 와닿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아리아를 사로잡은 이상한 점은, 관계의 꾸밈없음이었다. 누구도 서로에게 잘 보이려고 과장하지 않았다. 소년은 차가웠지만 작은 행동으로 배려를 보여줬다. 어느 날은 긴 트렌치를 입고 카페 앞에 서서 소녀가 비에 젖지 않게 했다. 또 어느 날은 소녀가 시험공부를 할 수 있도록 자신의 설계 사무실 문을 일찍 닫았다. 소녀 역시 작은 손이지만 단호하게, 소년의 프로젝트를 위해 카페 주인들에게 겨울 저녁의 빛이 골목길 뒤편에 어떻게 드는지 묻고 다녔다. — 도면에서는 빠질 수 있지만 실제 삶에서는 결정적인 디테일들.
아리아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도 언젠가 건축가가 된다면…” 그러고는 웃었다. “일단 숙제부터 해, 영웅아.”
하지만 드라마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그에게 영향을 주었다. 빗속의 장면들, 강가의 야간 산책, 물 위로 춤추는 종이등의 노란 빛, 절반은 침묵이고 절반은 시선인 대화들. 폭력의 몫은 0, 섬세함의 몫은 100. 빠른 박자와 반전을 늘 쫓던 아리아는, 여기서 ‘반전’이 짧은 미소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배워가고 있었다. 소녀가 처음으로 ‘씨’나 ‘님’ 없이 소년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혹은 소년이 소녀의 자리에 자신의 코트를 펼쳐 놓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순간에.
회차가 끝났을 때, 아리아는 눈을 깜빡이며 시계를 보았다. 늦은 시간이었다. 노트북을 닫았지만 부드러운 음악이 아직 방 안을 맴도는 듯했다. 침대에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이름 붙이기 어려운 것들이 마음속에서 꿈틀거렸다. 약간의 아쉬움, 약간의 설렘,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도시를 향한 일종의 그리움 같은 것. 서울은 더 이상 단순한 수도의 이름이 아니었다. 사랑이 그곳에서 ‘말이 되는’ 배경, 사람들이 서로를 위해 기다려 주는 도시. 그는 속으로 말했다. “이상했어… 아주 이상했어…”
다음 날부터, 새로운 습관이 시작되었다. 학교가 끝난 뒤, 가게에 가기 전에 10분 정도 앉아 다음 회의 한 조각을 봤다. 가게에서 손님이 없을 때면 장면들을 떠올렸다. 밤에 초록색 셔터를 내리고 아버지와 집까지 걸어갈 때, 아버지는 쌀과 기름 값, 밀린 어음, “이번 주엔 닭이 좀 싸졌으면 좋겠다” 같은 이야기를 했다. 아리아는 듣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 한쪽은 서울의 강가를 걷고 있었다.
어느 날, 쉬는 시간에, 평소보다 대담해진
그는
반
친구에게
이야기했다.
드라마의
소녀,
그
빗속
장면,
작은
카페,
건축가인
소년에
대해.
친구는
피식
웃더니,
– “이것 좀 봐! 아리아도 로맨스 보네!
내일은
한국
여자랑
결혼하겠다!”
주변
아이들이
깔깔
웃었다.
“오빠가
됐네?”
“김치
너무
맵지
않게
조심해!”
아리아도
웃었지만
진심은
아니었다.
볼
안쪽에
기분
나쁜
열기가
번졌다.
그는
말하지
않았다.
바로
그
순간,
더
이상
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
드라마,
이
감정은
그의
것이었다.
왜
학교
운동장의
흙바닥
한가운데
내놓아
농담들에
짓밟히게
해야
한단
말인가?
밤에 집에 돌아오자, 어머니가 밥상을
폈다.
밥과,
유혹적인
레몬향이
도는
고기스튜.
아버지는
조용히
밥을
먹었고,
텔레비전
뉴스는
끊임없이
불평을
쏟아냈다.
어머니가
물었다.
“아리아야,
생일
축하해.
사촌누나
선물
받았지?
마음에
들었니?”
아리아가
미소
지었다.
“응…
예뻤어.
이상할
정도로
예뻤어.”
아버지는
포크로
뉴스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일
아침
일찍
화물창고에
들러야
한다.
너도
학교
끝나고
가게로
와라.
새
물건이
들어올지도
모른다.”
– “네, 아버지.”
그는
다른
말을
하고
싶었다.
그
드라마의
소년이
건축가라는
것…
건축이
어쩌면
도면과
도장
이상의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
하지만
말하지
않았다.
아직은.
다음 날 밤에 본 2화는 그의 마음을 더욱 꽉 잡았다. 소녀가 엄마를 위해 수프를 끓이며, 작은 부엌의 창문으로 비 내리는 좁은 골목을 내다보는 장면. 수프의 김이 엄마의 얼굴을 부드럽게 만들고, 소녀의 손은 잽싸게 채소를 다지고, 소년의 짧은 메시지가 온다. “오늘 비가 네 기분을 더 좋게 했어? 아니면 더 안 좋게?” — 단순하지만 정확했다. 아리아는 속으로 생각했다. “왜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이렇게 덜 묻고 살까?” 그리고 이상하리만치, 상상 속 인물이 보낸 장문의 메시지 하나가, 그에게 자신이 얼마 동안 어머니에게 “피곤하세요?”라고 묻지 않았는지를 떠올리게 했다.
그날 오후 가게에, 늘 가격 흥정을 하던 노인이 찾아왔다. 아리아는 평소보다 더 인내심 있게 계산하고, 잔돈을 꼼꼼히 세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건강히 다녀가세요.” 노인도 평소에는 짓지 않던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리아는 놀랐다. “아마 이 드라마는 단지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들이 더 다정해지는 이야기일지도.” 그렇게 생각이 닿자, 소리 나지 않는 미소가 그의 입가에 걸렸다.
점점 그는 자신을 그 로케이션들 안에서 보게 되었다. 깨끗한 보도, 김치와 카레밥을 파는 노점들, 눈에 그림처럼 보이는 글자 간판들 아래. 그는 한글을 바라보며 마치 음악을 ‘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어느 밤, 무심코 ‘안녕하세요’를 인터넷에 검색하고, 발음을 따라 해보았다. “안, 녕, 하, 세, 요…” 조금 웃음이 나왔다. 귀여웠다. 하지만 그런 종류의 귀여움은, 사람을 자신의 미래에 조금 더 가까이 데려다주는 것에 속했다.
어느 에피소드에서는, 건축가인 소년이 설계 책상 위에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 손엔 부드러운 연필, 선은 투명하고 반듯했다. 스탠드 조명이 종이 위로 떨어졌다. 소녀가 조용히 다가와 차를 내려놓고 말했다. “내가 네 안에서 좋아하는 게 뭔지 알아? 너는 것들에게 시간을 줘. 서둘러 결정하지 않아. 모든 것이 스스로를 완성하게 놔둬.” 아리아는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마치 누군가가 그의 마음을 대신 말한 것처럼. 그 역시 것들에게 시간을 주는 것을 좋아했다—밤늦게까지 하는 공부, 가게에서의 묵묵한 도움, 아직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꿈에게도.
마침내 사촌누나에게 드라마에 대해 메시지를 보낼 용기를 냈던 날, 그는 짧게 썼다. “그 빗속 장면… 최고였어. 왜 그렇게 천천했는데도 사람을 붙잡아 둘까?” 사촌누나는 금세 답장을 보냈다. “사랑은 디테일에 있으니까. 크게 소리치는 데 있지 않으니까. 누가 우산을 너 쪽으로 조금 기울여 준다는 건, 널 ‘보았다’는 뜻이니까.” 아리아는 그 메시지를 몇 번이나 읽었다. ‘보아짐’—그날 이후, 그 말은 그에게 더 진지한 의미가 되었다.
하지만 이 새로운 세계 밖에는, 여전히 같은 세계가 흘러가고 있었다. 어느 날 기름이 늦게 도착하자, 아버지는 몹시 짜증이 났다. 계산이 엉켰고, 손님들은 불평했다. 아리아는 오랫동안 화물트럭 옆에 서서, 청구서의 잘못을 바로잡았다. 해 질 무렵, 그을음에 잔뜩 찌든 채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은 드라마를 틀지 않았다. 의자에 앉아, 책상 위에 머리를 얹고 몇 분간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원치 않았는데도, 그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 머리를 스쳤다. 그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오늘 밤도 지나가.” 노트북을 켰다. 바로 그 카페 장면. 소녀가 두 팔에 얼굴을 묻고 잠들었다. 소년은 조용히 잠들게 두었다. 카페의 불빛은 노랗고 따뜻했다. 아리아는 이 느릿한 이미지를, 마치 약처럼, 하루의 상처 위에 살짝 얹어 두었다.
몇 주가 흘렀다. 아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이 드라마를 나침반으로 만들었다. 모든 걸 그대로 따라 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아니다. 하지만 어디서든 소리가 너무 커지면—학교에서, 가게에서, 그의 머릿속에서—그는 그 침묵들을 떠올렸다. 모든 것의 대답이 더 크게 말하는 게 아니라는 걸 배웠다. 때로는 그저 바라보는 것, 우산을 조금 더 기울여 주는 것, 혹은 어지러운 책상 위에 조용히 찻잔을 놓아두는 것이 답이었다.
어느 날 미술 시간에, 선생님이 각자 숨겨둔 꿈을 종이에 적으라고 했다. 아이들은 축구선수, 자동차 사기, 캐나다 가기라고 썼다. 아리아는 잠깐 머뭇거렸다. 연필을 들었다. 이렇게 썼다. “아직 가보지 않은 도시로 가기. 사람들이 천천히 걸을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기.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면, 미소까지 함께 인사하는 것처럼 들리는 언어를 배우기.” 쓰고선 종이를 뒤집었다. 아무도 읽지 않았다. 읽을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알았다. 꿈이 ‘드라마 보기’를 지나 ‘살아내고 싶은 삶’으로 넘어갔다는 것을.
다른 어느 날, 전에 그를 놀리던 같은 반친구가 와서 물었다. “아직도 그 ‘사랑 드라마’ 보냐?” 목소리는 전만큼 날카롭지 않았다. 아마도 호기심이 생긴 것 같았다. 아리아가 말했다. “응. 좋은 것들을 가르쳐 줘.” 아이가 어깨를 으쓱했다. “예를 들어?” 아리아는 생각하더니 말했다. “이를테면, 누군가를 위해 계속 ‘좋아해’라고 말하지 않아도, 그 사람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 혹은 어떤 다리는 두려움으로라도 지어야 하는데, 그래도 지어야 한다는 것…” 그의 말은 끝까지 닿지 못했다. 종이 울렸다. 아이는 떠났다. 아리아는 남았다. 머릿속에서 문장은 끝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금요일 밤, 식구들은 저녁을 조금
일찍
먹었다.
아버지가
말했다.
“내일은
구시장
창고에
가야겠다.
쌀값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장부
걱정으로
마음을
졸였다.
아리아는
상을
치운
뒤
방으로
갔다.
노트북을
켰다.
새
회차를
틀기
전에,
그는
빈
노트를
하나
꺼냈다.
맨
위에
이렇게
적었다.
“한
편의
로맨스
드라마에서
내가
배운
것들.”
밑줄을
긋고
적기
시작했다.
– “디테일은 중요하다.”
– “인내는 아름답다.”
– “건축은 평안을 짓는 일이다.”
– “서울은 아마 내 집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내
집이
될지도.”
마지막
문장에서
그의
손가락이
잠시
멈췄다.
한숨을
쉬었다.
천천히
지웠다.
대신
이렇게
썼다.
“...언젠가, 보게 될지도.”
회차가 시작되었다. 단순하지만 중요한 장면이었다. 작은 공공도서관으로 이어지는 나무다리 위에 소녀가 서 있었다. 부드러운 바람이 소녀의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소년이 옆에 와서 말했다. “이 다리는 나무다리가 아니야. ‘결정의 다리’야. 지날 때마다 새로운 너를 보게 되지. 건널래?” 소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무서워… 그래도, 응.”
작은 방에서, 교과서 책장과 낡은 노트북 사이, 아리아 역시 다리 위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다리의 한쪽은 익숙하지만 좁은 삶, 다른 쪽은 먼 도시, 새로운 언어, 그리고 아직 이름도 확실치 않은 꿈.
회차가 끝났다. 아리아는 노트북을
닫았다.
침묵.
자기
숨소리와
시계
초침
소리.
천장을
보며,
그는
처음으로
소리
내어
말했다—아주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나,
언젠가
한국에
갈
거야.”
생각하는
것과
말하는
것은
달랐다.
단어가
입을
떠나는
순간,
모양을
갖춘다.
꿈을
소리
내어
부르면,
조금
더
현실이
된다.
바로
그때,
그의
휴대전화가
‘띵’
하고
울렸다.
사촌누나에게서
온
하트
스티커
하나와
짧은
문장.
“봐?
결국
빠져들
줄
알았어!”
아리아는
웃었다.
그리고
답장을
보냈다.
“아마도…”
그는
쓰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결국
이렇게
썼다.
“내일부터
작은
걸
하나
배우려고.”
– “뭔데?”
아리아는
화면
위에
손가락을
올려두다가,
이렇게
썼다.
“한국어
단어
하나.”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스탠드 조명의 빛이 “배운 것들” 노트 위로 떨어졌다. 그는 펜을 들어 구석에 적었다. “안녕 — سلام(안녕).” 그 아래에, 자신을 위해 한글 발음을 한자로 적었다. “안-녕.” 연습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미소 지었다. 이제는, 학교 운동장의 농담들로는 물러서지 않을 무언가가 시작된 듯했다. 느린 결정들로 이루어진, 그런 종류의 것.
새벽 무렵, 잠에 들기 전, 멀리서 도시 소리가 조금 잦아들었다. 아리아의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잠이
막
그를
데려가기
직전,
부드러운
그림
하나가
마음을
스쳤다.
몇
년
뒤의
자신.
멀리
떨어진
공항.
그리
무겁지
않은
배낭.
전광판에
쓰여
있는
글자:
Seoul – Arrival. 그는 미소 지었다. 아직은 이르다.
아마
길은
길고
험할
것이다—공부,
일,
돈,
수많은
장애물.
하지만
어젯밤까지
그의
영웅이
영화
속
군인들이었다면,
이제는
소리
없이
천천히
움직이는
자기
자신이었다.
나무다리를
건너갈
용기를
낸
소년.
그는
불을
껐다.
방은
어두워졌다.
유일한
빛은,
가슴
속에서
천천히
길을
찾는
그
빛뿐이었다—어설픈
‘안녕’들과,
비
내리는
도시의
이미지에서
시작된.
파트 1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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